탐정사무소 [포토뉴스] 광화문광장서 필라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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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사무소 [포토뉴스] 광화문광장서 필라테스

이길중 0 0
탐정사무소 시민들이 1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025 서울 익스트림 스포츠 페스티벌’에서 필라테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갯벌에 고립된 노인을 구하다가 숨진 고 이재석 경사의 영결식이 엄수됐다. 중부지방해양경찰청은 15일 오전 인천 서구 인천해양경찰서 청사에서 고 이재석(34) 경사의 영결식을 거행했다. 이날 영결식은 오상권 중부해경청장이 장례위원장을 맡아 중부해경청장 장으로 엄수됐으며 유가족과 동료 해양경찰관 등 1천여 명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영결식은 고인에 대한 묵념, 약력 보고, 대통령 조전 대독, 동료 고별사, 헌화 및 분향, 경례, 운구 순으로 진행됐다.
유족들은 넋을 잃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 경사의 어머니는 너무 억울하다. 진실을 밝혀주세요라고 울분을 토했다. 이 경사와 임용 동기인 김대윤 경장은 사람들이 너를 영웅이라고 치켜세우지만, 어둠 속 바다에서 혼자 싸웠을 너의 모습이 떠올라 비통함을 감출 수 없다고 울먹였다.
고인은 경장에서 경사로 1계급 특진했고 대한민국 옥조근정훈장을 추서 받았다. 이 경사는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해경은 외부 전문가 6명으로 구성된 진상조사단을 꾸렸으며 오는 26일까지 자료 조사와 현장 점검 등에 나서 사고 원인을 규명할 계획이다.
이 경사는 지난 11일 오전 2시 16분쯤 인천 옹진군 영흥면 꽃섬 갯벌에 고립된 중국인 남성을 확인하고 혼자 출동했다. 이 경사는 착용하고 있던 구명조끼를 건네고 구조를 시도했지만, 약 1시간 뒤인 오전 3시 27분쯤 밀물에 휩쓸려 실종됐다. 이후 6시간 뒤인 오전 9시 41분쯤 꽃섬 인근 해상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옮겼지만 숨졌다.
1990년대 학생운동은 스스로를 ‘막차 탄 세대’라 불렀다. 학생운동이 최절정에 달하고 점차 퇴조하던 시대의 분위기를 자조하는 말이었다. 작년 12·3 계엄 포고문에서 대학이 언급되지 않은 건 그 장기적 결과라 하겠다. 하지만 30년이 지나도 ‘막차’는 끊기지 않았다. 비주류일지라도 학생운동은 아직 이어지고 있다. 더욱이 대학생 대신 다른 이름을 지닌 다양한 운동이 성장해왔다. 겨울의 광장을 가득 메운 깃발과 응원봉은 그 결과다.
그렇다면 ‘막차’라는 은유야말로 민주화 시기의 학생운동을 과도하게 신화화한 것 아닐까. ‘막차 탄 세대’는 오히려 민주화 이후 새로운 시대의 ‘첫차’를 탔던 것 아닐까. 그 누구도 자기 시대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다들 자신의 시대를 살고, 시대와 대결하는 것을 통해 배운다. 그런 의미에서 막차는 시대에 둔감해져 그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것이다. 그렇게 누군가의 첫차는 다른 누군가의 막차가 된다.
조국혁신당 성폭력 사건과 당의 대응을 지켜보면서, 모두가 동일한 밀도로 동시대를 통과한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언론에 출연한 인사들은 2차 가해와 직장 내 괴롭힘이 일어나는 조직문화에 아랑곳하지 않고 ‘절차를 지켰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들은 해일 앞에 웅크린 채 조개만 줍고 있다.
조국혁신당을 향한 여론이 보여주듯, 한국 사회는 그런 안일한 대응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는 데까지 왔다. 이제는 10년이 되어가는 페미니즘 리부트, 권력형 성폭력을 향한 미투 운동, 그리고 젊은 여성들이 지켜낸 지난겨울의 광장에 이르기까지. 누군가는 그 밀도 높은 시간을 치열하고 절박하게 통과해왔다. 이번 시대의 ‘첫차’는 그들의 몫이다. 반대로 그 시대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혹은 피해자 비난과 조직 보위 논리라는 잘못된 교훈을 도출한 이들도 있다. 이제 그들에게는 ‘막차’ 타고 귀가해야 할 의무가 남았다.
첫차와 막차 사이에 기억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조국혁신당의 무책임한 대응은 지난 10년간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구는 것이다. 망각한 자는 성폭력 사건을 그저 털어낼 리스크로 볼 뿐이다. 하지만 시대로부터 배우며 공동의 기억을 새겨온 사람들은 피해자 곁에 서며 저항했다. 결국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은 그 시대를 가장 치열하게 살아낸 사람들이다. 그런 이들이 막차 전 탈출을 시도하는 조직에 과연 미래가 있을까.
청년과 중년의 경계에 선 나도 책임을 느낀다. 더 이상 위를 향해 들이받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게 됐다. 안타깝게도 좋은 어른은 드물고, 특히 좋은 남자 어른은 멸종위기종이다. 대신 반면교사는 심심찮게 찾을 수 있다. 그들을 닮지 않으려면, 미숙하고 모자라지만 나도 이제 어른 행세를 해야 한다. 기자회견에 나선 강미정 전 대변인의 모습이 그러했다. 후배와 부하의 실수를 책임지는 건 나다. 그들이 부당한 일을 겪으면 내가 들이받아야 한다. 내가 감당해야 하는 책임의 크기를 가늠하고, 내 위치를 의식하며 후배를 대하려 한다. 믿고 맡기는 동시에 지켜봐주고, 먼저 마음을 읽어주고 알아주는 사람이 되려 한다. 그래야 한다고 스스로 되뇐다. 나는 이것을 운 좋게 만난 어른인 노혜경 시인에게서 배웠다.
지난 12·3 내란은 지지 기반이 줄어들고 고립돼가는 장기적 위기를 뒤집으려던 보수 세력의 쿠데타였다. 아직도 내란 세력이 국가 시스템 곳곳에 자리하고, 극우 세력의 준동은 위협적이다. 다만 그것이 상대방을 부정하는 것을 자신의 정체성과 명분으로 삼는 걸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그런 시시하고 못난 어른이 되지 않으려면, 지금 시대로부터 배우기를 게을리해서는 안 되겠다. 그것이 용기 있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향한 응답 책임을 잊지 않으려는, 지난 10년 동안 성장해온 내 나름의 기억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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