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스 “대러 제재 아직 가능···협상과 압박 계속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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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스 “대러 제재 아직 가능···협상과 압박 계속할 것”

이길중 0 0
JD 밴스 미국 부통령이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대러시아 제재’ 카드가 여전히 남아있다고 밝혔다.
밴스 부통령은 이날 방영된 미 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며 “우리는 사안별로 어떤 조치가 러시아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 적절한 압박을 행사할 수 있을지 판단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는 러시아의 행동을 통제할 수 없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었다면 이 전쟁은 7개월 전에 끝났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많은 카드를 갖고 있다고 믿는다. 미국 대통령(도널드 트럼프)은 이 분쟁을 끝내고 압박을 가하기 위해 남은 카드가 많다. 그것이 우리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대러 제재는 러시아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 등 경제 제재뿐 아니라 러시아 석유를 구매하는 국가들에 대한 ‘2차 제재’도 포함한다. 미국은 이미 러시아산 석유를 대량 구매하는 인도에 ‘2차 제재’ 성격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밴스 부통령은 이를 “협상의 방식이다. 조처하고 당사자와 대화하며 의견 일치가 있는지를 보려 하는 것”이라면서 “우리는 지난 몇 주 양측(러시아-우크라이나)에서 일부 상당한 양보가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우리는 결국 성공하거나 벽에 부딪힐 것”이라면서 “만약 벽에 부딪힌다면 우리는 협상 과정을 계속하고 압박도 계속할 것이다. 이것이 이 전쟁을 끝낼 활기찬 외교”라고 했다.
밴스 부통령은 러시아산 석유를 더 많이 구매하는 중국에 대한 제재가 없는 이유에 대해선 “현재 중국에 54%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으며, 이미 중국에 상당한 제재를 가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이 전쟁을 끝내려 공격적인 경제 압박을 가하고 있고, 추가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진전이 있다고 느끼면 완화할 수 있다”며 “주고받는 것은 우리가 작동한다고 믿는 협상의 부분이며, 최종 결과에 도달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이 과정을 가능한 한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밴스 부통령은 러시아 측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마련하려 하는 종전 협상을 위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정상회담이 신속히 추진되지 않을 것이라는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는 것에 대해선 “러시아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상당한 양보를 했다고 본다. 그들은 핵심 요구 중 일부에 유연성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러시아 측의 양보 내용으로는 “전쟁 후 우크라이나의 영토 보전(territorial integrity)을 인정했다는 것”, “키이우(우크라이나)에 꼭두각시 정권을 세울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한 것”, “우크라이나 영토 보전을 위한 일부 안전 보장이 있을 것을 인정한 점” 등을 꼽았다.
밴스 부통령은 우크라이나 안전보장과 관련해선 미국 지상군 파병이 없을 것이라고 거듭 확인한 뒤 “우리는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안전 보장 및 신뢰 확보를 지원하도록 적극적 역할을 계속할 것”이라며 유럽뿐 아니라 “러시아는 살상 중단을 위해 필요한 핵심 당사자여서 (안전보장 논의에) 관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1.5선인 장동혁의 정치적 자산은 한동훈 체제에서 국민의힘 사무총장·수석최고위원을 지낸 것, 탄핵 정국에서 윤석열을 강성 옹호하는 새로운 얼굴로 떠오른 것 정도일 것이다. 장동혁은 전당대회 기간 전한길씨 등과 만나 극우적 발언을 쏟아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키려고 했던 자유민주주의 체제, 굳건히 하려고 했던 정신에 대해 계엄 이후에도 목소리가 높아졌는데 우리는 대선 국면에서 제대로 끌고 가지 못했다”고 했고, “사전투표를 없애고 본투표 기간을 늘리겠다. 현장에서 직접 수개표하는 것으로 제도를 바꾸겠다”며 부정선거 음모론에 동조했다. “제가 당대표가 된다면 적절한 시점에 (윤석열) 면회를 가겠다”고 했다.
그런 장동혁이 지난 26일 국민의힘 당대표로 선출됐다. 당 명칭부터 그렇거니와, 국민의힘은 지금껏 ‘국민’을 내세웠다. 보수를 기반으로 중도층까지 흡수하는 포괄정당을 지향했다. 집권을 노리는 주류 보수정당의 당연한 선택지였다. 그러나 장동혁은 당선 일성으로 “모든 우파 시민과 연대해 이재명 정권을 끌어내리는 데 제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했다. ‘국민’을 대체한 ‘우파 시민’이라는 어휘가 깃발처럼 펄럭인다. 포괄정당 노선의 폐기요, 우익 이념정당으로의 재정립 선언이라 할 수 있다.
포괄정당을 지향하면 다수 국민의 뜻에 반응할 동기가 생긴다. 그리고 바로 거기에서 경쟁하는 당들과의 접점 내지 교집합이 만들어진다. 다수 국민의 마음을 얻기 위한 정당들 간의 경쟁, 곧 정치의 공간이 열리는 것이다. 그러나 장동혁은 ‘우파 시민’의 좁은 울타리에 당을 가둠으로써 국민의힘을 이런 책무에서 해방시킨다. 그런 점에서 장동혁의 취임 일성은 일종의 반정치 선언이다.
김문수가 당대표가 되었더라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김문수는 전당대회 기간에 전한길씨 유튜브 채널에 나와 윤석열이 입당하면 받겠다고 했다. “계엄으로 인해서 누가 죽었거나 다쳤거나, 그 6시간 만에 계엄이 해제되고 (죽거나 다친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라고 했다. 탄핵 찬성파에 유화적인 포즈를 취했달 뿐 내란을 옹호하고 윤석열을 복권시키려 한다는 점에서 장동혁과 오십보백보다. 당대표 선거 결선에 오른 두 사람이 이렇고, 최고위를 구성하는 9명 중 7명이 탄핵 반대파가 되리라는 건 ‘윤 어게인’이 국민의힘 주류라는 뜻이다. 거기에 당내 킹메이커가 되어버린 전한길씨 모습까지, 명실상부한 극우정당의 면모로 손색이 없다.
이들은 국회의사당에 난입한 폭도를 애국자로 둔갑시킨 트럼프식 전도를 꿈꾸는 것 같다. “윤 전 대통령이 재구속되기 얼마 전 만났을 때 자신은 이 정권이 1년을 채 넘기기 힘들 것으로 본다고 했다”는 신평씨의 전언을 보면, 감옥에 갇힌 윤석열도 그걸 기대하는 모양이다. 해프닝으로 끝나기는 했지만 한·미 정상회담 직전 트럼프 대통령이 SNS에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느냐. 숙청이나 혁명처럼 보인다”는 글을 올리자 김문수는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에서 고립될 중대한 위기에 직면했다”고, 나경원은 “한국 사회 및 정치에 대한 불신이 미국 내에서, 또 국제적으로도 확산하고 있음을 암시한다”고 기민하게 반응했다. 미국의 내정 간섭으로 내란 세력이 복권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트럼프 구원론’은 한국 내부의 정치 역학에서는 ‘윤 어게인’이 불가능하다는 절망적 인식을 깔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사회 운영의 최소 규칙을 어기고 민주공화국의 숨통을 끊으려 한 세력, 그리고 그걸 옹호하는 세력과 ‘권력투쟁도 사회적 합의의 최저선은 지키는 선에서 해야 한다’고 믿는 한국 사회의 상식적·평균적 인식 사이에는 거대한 심연이 놓여 있다. 이 심연을 건너뛰려 애써도 모자랄 터인데, 국민의힘은 반대 방향으로 고속 질주하고 있다. 정당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자발적 소수화요, 정치적 자해다. 그 근저에는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친윤의 사욕이 있음이 주지의 사실이다.
윤석열은 12·3 내란으로 정치적 반대자를 절멸하려 했다. 그 부인은 매관매직까지 해가며 국정을 농단했다. 그런 자들을 공식적으로 옹호하는 극우 제1야당은 존재 자체가 정치적 추문이요, 민주주의·헌정질서에 대한 위협이다. 반정치를 추구하는 정당과 어떻게 정치할 것인가. 게임의 규칙을 어긴 세력과 어떻게 게임을 할 것인가.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정당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 당장 여야관계에서부터 한국 정치를 시험에 들게 하는 참으로 난감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
정치하는 엄마들, 평등교육 실현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행복한 교육 학부모회 회원들이 27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고교학점제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올해부터 도입된 고교학점제가 학교 현장의 준비가 미흡한 상황에서 학생들에게 섣부른 진로 결정을 강요하고, 사교육 의존도를 높이며 입시 경쟁을 과열시킬 것을 우려했다.
<연합뉴스>
불법계엄 옹호 부적격 판단국힘 “다수의 독재” 항의
산은법 개정안 등 14개 통과오송 참사 국정조사도 가결
국민의힘이 추천한 국가인권위원회 위원 2명 선출안이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여당의 반대표로 부결됐다. 여권과 시민사회에서 인권위원에 부적합하다고 비판해 온 이들이다. 국민의힘은 국회 일정 보이콧을 선언했다.
이날 본회의에 상정된 이상현 숭실대 국제법무학과 교수의 인권위 상임위원 선출안은 재석 의원 270명 가운데 가결 99표, 부결 168표, 기권 3표로 부결됐다. 비상임위원으로 추천된 우인식 법률사무소 헤아림 대표변호사 선출안도 재석 의원 270명 중 가결 99표, 부결 166표, 기권 5표로 부결됐다.
유상범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는 의장석으로 다가가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정당 추천권을 이렇게까지 무력화하는 건 말이 안 된다”며 항의했다.
유 원내수석은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인권위에 좌우가 있나”라며 “타협과 대화가 없는 민주주의는 다수의 독재”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독재 타도”를 외치고 본회의장을 떠났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후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서 ‘묻지마식 의회 폭주 민주당식 협치 파괴’ 규탄대회를 열고 “일방적으로 폭주하는 민주당과 민주당 출신 의장의 일방적 운영에 강력히 반대하며 일절 협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신임 대표도 이날 국회에서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과 만나 선출안 부결에 대해 항의했다. 장 대표는 “국민의힘 몫 인권위원 추천안이 본회의에서 부결되는 난이 일어났다”며 “부결이 반복된다면 한국의 헌법기관, 국가기관이 모두 한쪽으로 편향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개신교 반동성애 단체에서 활동했고,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반대를 주장하며 12·3 불법계엄을 옹호한 교수모임에도 이름을 올렸다. 우 변호사는 극우 인사인 전광훈 목사를 변호한 이력이 있다. 앞서 국민의힘은 반동성애 활동을 한 지영준 변호사를 상임위원으로 추천했다가 논란이 일자 이를 보류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국민의힘 의원들의 퇴장에 유감을 표하며 “위헌·위법한 비상계엄을 옹호하는 인사를 국회가 인권위원으로 추천하는 것은 국회 스스로가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권위원 출신인 서미화 민주당 의원은 의사진행발언에서 “인권위를 일명 ‘안창호(위원장) 사조직’ ‘윤 어게인 집합소’로 전락시키려는 국민의힘 만행에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이날 국회에서는 여야가 합의한 비쟁점 법안 14개가 국민의힘이 퇴장한 가운데 여당 주도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참전 유공자가 사망한 경우 배우자에게 생계 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참전유공자 예우법 개정안, 한국산업은행의 법정자본금을 증액하는 내용의 한국산업은행법 개정안 등이 통과됐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 국정조사 계획서도 재석 163명 중 찬성 161명, 기권 2명으로 가결됐다. 국회는 이날부터 다음달 25일까지 30일간 오송 참사의 직간접적 원인과 책임 소재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를 실시한다.
김도래 북촌불교미술보존연구소 대표(51)는 지난 19일 경기 화성시에 있는 연구소에서 경향신문 플랫과 만나 자신의 사명을 이와 같이 설명했다. 김도래 대표는 문화재 단청 수리기술자·보존과학 수리기술자·도금 수리기능자·칠공 수리기능자·전통도금 기능계승자 등 문화재 보존과 전승에 특화된 자격을 보유하고 있다. 기자가 방문한 이날도 연구소에서는 보존 작업이 한창이었다. 불교 문화재뿐만 아니라 윤봉길 의사의 형틀과 같은 나라의 보물도 그의 연구소에서 새 삶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김도래 대표는 불교미술계 명장 북촌 김익홍 선생과 개금장(개금: 불상에 금박을 새로 입히는 일) 백태남 선생의 딸이다. 그런 만큼 불교미술은 그에게 ‘벗어날 수 없는’ 팔자처럼 다가왔다. 남동생에게 가업을 잇는 ‘사다리’ 역할이 싫었던 어린 시절을 지나 김 대표는 이제 더 많은 이들에게 문화재 보존의 가치를 전하는 다리가 됐다.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김 대표는 내 손으로 문화재를 망칠 수도 있다는 압박감이 아직도 든다고 했다. 또한 ‘어디 여자가 부처님에 손을 대느냐’란 인식이 만연하던 시절엔 절에서 쫓겨나거나 작업물을 도로 가져오는 일도 겪었다. 그 세월을 지나 이제는 한 때 쫓겨났던 절에서 당당하게 작업하고, 부처님을 되살리는 ‘불모’로 존중받는다.
김도래 대표는 많은 이들이 문화재 보존 일에 뛰어들기를 바란다. 분명 고생스럽지만 유물을 건강히 집으로 돌려보낼 때, 문화재 수리 능력을 인정받았을 때의 기쁨이 무척 크기 때문이다. “유물의 목숨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끊임없이 공부할 자신이 있고, 용기가 있는 진실한 마음”이 ‘문화재 의사’가 되기 위한 첫번째 자격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 어떤 계기로 단청과 문화재 복원 분야에 오게 됐나요?
“저희 부모님은 가업을 잇기를 바라셨어요. 어릴 때는 그게 싫었어요. 부담스럽고, 힘들고, 저는 아주 ‘E’(외향형) 성향을 갖고 있는데 왠지 차분해야 할 것 같고…. 저랑은 안 맞는다고 생각했죠. 중학교 특별활동 시간에 유화를 그렸더니 엄마가 붓을 다 부러뜨리고 못 그리게 했어요. ‘너는 불교미술을 해야 하니까 당장 불교미술이 아니더라도 동양화나 서예를 해야 한다’고요. 엄마가 엄격했고 무서워서 서예랑 동양화를 했어요.
19살 차이 나는 남동생이 있어요. 부모님은 동생에게 가업을 물려주고 싶어했고, 저는 사다리 역할처럼 부모님에게 배워서 동생에게 다 줘야 한다는 게 싫었던 것 같아요. 사춘기 때는 그 일이 너무너무 하기 싫어서 도망도 다녔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이게 그냥 팔자인 것 같아요, 팔자. 도망가려고 해도 도망가지지도 않고 계속 이쪽으로 맴돌게 되는 상황이 돼버려서 학교 공부 끝나고 (24살부터) 다시 불교미술을 했죠. 그때 동방미술대학에 엄마가 교수였어요. 한번 졸업해 보는 게 어떻겠냐 설득에 설득하셔서 어쩔 수 없이, ‘그래 한 번쯤은 해주지’ 이런 거였죠. 막상 발을 딛고 계속하려다 보니까 이게 내 일이고 운명이고 팔자인 것 같아요.”
- 부모님은 왜 남동생에게 물려준다고 생각하신 걸까요? 다른 남매들도 가업을 이었나요?
“그냥 남자니까. 가업을 잇는 부분에서 남자가 ‘있어 보인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들을 어떻게든 낳아 물려줘야 한다 생각한 것 아닐까요. 엄마는 불교미술하는 집안을 만드시는 게 꿈이었어요. 그래서 여동생, 남동생 모두 다 이 일을 하기를 너무나 바랐고, 그런 마음을 아니까 저는 동생들을 가르쳐보고 했죠. 그렇지만 될 사람은 따로 있는 것 같아요. (여동생은 불교미술 작가다) 가업을 잇는 건 저뿐입니다.”
- 가업을 잇는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사실 지금은 가업이라는 게 중요하진 않아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기가 태어날 이유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 같아요. 저는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 무엇을 할지 설명하는 것을 엄청 잘해요. 남동생한테 제가 부모의 사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고 그랬잖아요. 저는 인생이 그랬던 것 같아요. 어린 시절엔 동생들에게 그랬고 지금은 많은 사람에게 강의도 하니까요. 또 저는 문화재 수리 기술자예요. ‘문화재 의사’잖아요. 말하지 못하는 유물들이 어디가 아픈지를 대변하고 설명하는 일을 해요. 소중한 전통을 지키고 미래에 남겨주는 것이 제가 태어난 이유 같습니다.”
- 단청 작업은 어떻게 구성되나요?
“기본적으로 혼자 할 수는 없어요. 건물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아무리 못해도 대여섯 명~수십 명까지도 작업을 해요. 단청의 문양은 가칠 단청 등 크게 4개로 나뉘고, 부처님을 모시느냐 보살님을 모시느냐에 따라 건물의 격이 달라지기 때문에 미리 설계해야 해요. 작업에 들어가면 화장하는 것과 비슷해요. 화장하기 전 얼굴 각질 제거를 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단청도 ‘면닦기’를 하고, 스킨로션을 바르는 것처럼 아교로 ‘포수’를 해요. 또 프라이머를 바르듯이 ‘바탕칠’을 하고 파운데이션으로 톤을 맞추는 것처럼 ‘가칠’을 하죠. 색조화장처럼 ‘초비’를 하고, 마지막에 아이라인을 그리듯이 ‘선 긋기’를 합니다. 화장이 날아가지 않게 픽서를 뿌리듯이 단청도 마찬가지고요.”
- 다른 나라와 비교해 한국 단청은 어떤 특징이 있나요?
“극지방의 얼음, 유럽의 대리석처럼 각 나라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가공이 쉬운 재료로 집을 짓는 거예요. 동양권에서는 그 재료가 나무입니다. 그런데 똑같이 나무로 짓는 일본을 보면 우리만큼 단청이 발달하지 않았어요. 일본은 하드 우드(hard wood)인 활엽수를 주로 쓰기 때문에 굳이 색을 칠해서 보호해주지 않아도 균과 충이 들어가지 않아요. 반면 우리는 소나무로 짓는데, 소나무는 균과 충이 좋아하는 나무입니다. 그래서 이를 보호할 수 있는 칠인 단청이 발달한 것이죠. 일본, 중국, 동남아에는 단청이란 용어가 없고 ‘건물 채색화’라고 합니다. 건축이 주인공이고 거기다 칠을 한다는 개념이죠. 우리는 단청이라는 고유명사가 있고 문양과 칠 기법도 가장 다양하고 섬세하게 발달했습니다. 가장 취약하기 때문에 발전한 것이죠.”
- 한국에서는 단청을 접하기 어렵지 않아 귀한 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물감이 흔해 빠졌으니 칠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파란색 돌가루(물감) 주먹만큼이 1000만원이에요. 어마어마하게 비싸요. 그 옛날에 우리나라에는 색토가 없었고 이란이나 중국에서 수입해 왔습니다. 나라에선 단청은 궁궐과 사찰에만 칠하라고 가사제한령을 내렸어요. 하지 말라니까 몰래 하고 그랬죠. 조선시대 어느 높은 사람이 첩의 집에 단청을 해줬다는 이유로 상소가 빗발친 일도 있습니다. 그럴 정도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것입니다. 워낙 많이 보이니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숭례문 단청 재룟값만 8억원이 들었어요. 돈이 있다고 다 할 수 있는 게 아닌,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진짜 ‘플렉스’지요.”
- 그동안 어느 곳의 단청을 작업했는지 궁금합니다.
“너무 많습니다. 해인사 용탑선원, 해인사 고불암, 진주 청곡사, 수원 봉령사, 서울 대각사 등등 셀 수 없을 정도로요.”
- 문화재 수리 기술자와 기능자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기술자는 전반적인 부분을 다 읽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입니다. 기술자가 스태프, 배경, 음악, 배우 등 전체를 다 보는 영화감독이라면 기능자는 배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장에서 작업은 기능자가 대부분 하고, 기술자는 총감독하죠.”
- 기능자에서 기술자가 되는 것인가요?
“기술자를 하느냐 기능자를 하느냐는 성향 차이예요. 전체를 보는 눈을 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물론 기능자에서 기술자로, 기술자에서 기능자로 가는 예도 있는데요. 저는 타고나기를 기술자로 타고난 것 같아요. 전체를 봐야 편하더라고요. 문화재보호법에는 ‘기술자는 기능자를 관리·감독한다’고 해서 흔히 위계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아요. 돈도 기능자가 더 많이 벌어요.”
- 어떻게 일을 찾고 맡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나라의 일, 국보나 보물 같은 건 다 입찰로 나와요. 기술자·기능자 구성, 자본금 등 충족 조건을 갖춘 회사만 입찰할 수 있어요. 다음으로는 사찰이나 관공서 같은 곳과 수의계약을 맺기도 하고요. 요즘은 국보나 보물급 되는 일이면 어떻게 작업할 것인지 관계자들 앞에서 발표해야 해요. 다 자격을 갖춘 사람들만 지원하기 때문에 그중 1등을 뽑는다는 것이 엄청 치열합니다. 몇 달 동안 잠도 못 자고 준비했는데 떨어지면 속상하죠.”
- 연구소에서는 몇 명 정도가 일하고, 현재 어떤 작업을 하고 있나요?
“13명 정도가 일하고 8~9건을 작업 중입니다. 그중 하나는, 윤봉길 의사가 일본 가나자와에서 사형당할 때 매달렸던 형틀이 있어요. 일본이 윤봉길 의사를 욕보이려고 사람들 다니는 길에 그냥 묻었거든요. 김구 선생이 박열 선생에게 수습해오라고 해서 가져왔습니다. 십자가 형태 중 가로목은 없어졌는데 세로목은 남았습니다. 그 삼나무 형틀이 보물입니다. 셀룰로스 같은 나무 성분이 빠지지 않게끔 안정화·강화 처리를 하고, 그걸 넣을 함도 제작해야 해요.”
- 문화재 복원은 책임감이 어마어마할 것 같습니다. 어떤 심정이나 각오로 임하시는지요?
“처음에는 유물이 들어오면 나갈 때까지 잠을 못 잤어요. 미치는 줄 알았죠. 이거 잘못되면 어떡하지. 제가 조금만 잘못 생각하면 이 유물은 없어져요. 그냥 죽는 거잖아요. 그래서 우리 같은 사람을 ‘감옥에 등을 대고 있는 사람’이라고들 말하거든요. 자칫 잘못하면 감옥 가요.
저는 ‘문화재 의사’입니다. 소장자가 유물을 의사가 있는 병원으로 옮기는 거죠. 사랑하는 가족을 맡기는 것과 같아요. 그때 제가 ‘어 저도 무서운데요’, ‘‘못 하겠는데요’ 이러면 소장자가 얼마나 불안하겠나요. 그래서 저는 그러면 안 돼요. 옛날에는 사실 떨리는 게 우선이었지만 겁나고 떨린다는 내 감정을 앞세울 순 없습니다.
유물이 누구의 것인지 아시나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후손의 것입니다. 물려주기 위해 저희 같은 사람이 있죠. 그래서 당당히,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공부하면서 이 유물이 왜 아픈지를 알아내야 해요. 무서운 건 안으로 감춰놓고 ‘센 척’ 해야 하는 거죠.”
- 작업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유물이 집에 갈 때가 가장 보람되고 행복합니다. 죽은 유물을 살릴 순 없거든요. 할아버지를 청년으로 만들 순 없어요. 그런데 이 할아버지가 지금 이 상태로 건강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게 보존처리거든요. 그렇게 건강하게 나갈 땐 완전히 신나죠. 그리고 사실은, 유물이 오면 자문회의를 3번 거치는데요. 교수님, 공무원, 소장자 모두가 저를 쳐다봐요. 거기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공부해 ‘내가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면 눈빛이 달라져요. 처음의 시선과 다 끝낼 때의 시선이 달라지면 신납니다.”
- 불교계가 보수적이어서 힘든 적도 있었다고요.
“90년대 중반쯤 해인사에서 개금 공고가 떴어요. 저와 엄마가 절에 가서 출타하신 주지 스님을 일주일 동안 기다렸어요. 엄마 성함이 ‘백태남’이다 보니 스님은 남자인 줄 알았나 봐요. 그런데 사실 여자였다는 걸 스님이 알게 됐고, 저희가 일주일을 기다렸는데도 안 된다고 하는 거예요. 그때 저희 엄마가 20대쯤 된 나이 어린 스님 앞에 무릎을 꿇으며 ‘삭발할 테니 제발 개금을 하게 해달라’고 빌었어요. 저까지도 삭발을 시키겠다고 하셨죠. 돈을 벌려고 그런 게 아니라 해인사 부처님을 개금하는 일이 큰 영광이잖아요. 끝끝내 못하게 하셨어요. 결국 저희 아빠와 남자 제자가 했죠.
단청 현장에서도 제가 두세 번 쫓겨난 적도 있고요. 불화 그림을 다 그려 갔는데 여자가 했다는 이유로 안 받고 다시 가져온 일이 되게 많았습니다. 전문가나 스님들이 ‘어디 여자가 설명하느냐’고 하던 것들도 참 무섭고 힘들었고요. 제자들이 또 나와 같은 고통을 받는 게 한편으론 마음이 아파요. 지금의 저는 명예롭고 행복하지만 이 행복이 올 때까지 고달픈 날이 너무 많았어요.”
- 여자는 안 된다는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그림 크기가 3~5m 정도로 크잖아요. 그 그림을 바닥에 깔아놓고 하거든요. 여자가 부처님 위에 올라탄다고 못 하게 했었어요. 개금도 불상이 크면 무릎 위에 올라가서 작업해야 하거든요. 지금은 많이 변해서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아직도 연세 많은 스님은 여자가 작업하는 걸 꺼리기도 합니다.”
- 이렇게 여자가 환영받지만은 않는 일이라는 걸 어머님은 너무나도 잘 아셨을 텐데 딸에게 물려주려고 하신 이유가 뭘까요?
“아빠가 일찍 돌아가셨어요. 아빠가 계실 때는 아무도 제 앞길을 막는 이가 없었어요. 자연스럽게 일하고 하고 싶은 일 다 할 수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니까 모든 남자들이, 모든 스님들이 저한테 다 달라붙는 거예요. 자기 애인하자는 사람도 있고, 자기한테 잘 보여야 일 준다는 사람도 있고. 너무 치욕스럽고 힘든 일이 많았어요.
그때까지는 아빠가 울타리인지 몰랐어요. 저희 엄마도 그랬던 것 같아요. 엄마 본인이 아빠의 울타리 안에서 일을 했으니까 저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도 같아요. 참 속상하지만 아직도 문화재는 이런 일이 많아요. 제 제자들은 여자가 많아요. 제가 공부할 때도 여자 친구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지금 이 문화재 일하는 사람은 딱 둘밖에 없어요. 앞으로는 좋은 세상이 와야겠죠.”
- 쫓겨났던 해인사에 다시 가서 일하실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제가 단청기술자로 마지막 작업을 한 게 해인사입니다. 지금까지도 칭찬을 많이 받아요. 그때 좀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때 나 일 못 하게 했었지? 후회할 거야’ 이렇게요. 너무 신났고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 줬어요. 저처럼 일하는 사람을 불교에서는 ‘불모’라고 해요. 부처님을 태어나게 해주는 어머니라는 뜻이니,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요. 불화를 그리면 보살님들이 저한테 와서 절하고, 개금을 하면 스님들이 저한테 와서 절해요. 어린 시절 쫓겨나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는데 이제 이 나이가 돼서 불모 소리도 듣고 스님들한테 절 받아서 좋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기쁜 마음만이 아니에요. ‘지금은 이렇게 하면서 옛날엔 왜 그랬는데’ 같은 마음이 같이 와요. ‘이걸 하기 위해서 내가 얼마나 미친 듯이 그림 그리고 공부하고 살았는데’란 생각이 들어요. 이제 와서.”
- 공방과 연구소를 차린 이유와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북촌불교미술보존연구소에서는 문화재 복원 일을 하고 북촌 한옥에서는 교육과 체험을 하거든요. 제자들이 단청을 공부하려면 붓과 물감이 필요하잖아요. 불교미술 재료는 파는 데가 없어요. 제가 제자들을 쓰게 할 안료를 개발하고 붓과 도구를 만들려고 했던 것이죠.
사실 이 연구소는 얼마 안 남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노안이 왔고 체력도 많이 달리거든요. 이거를 오래 하는 건 욕심이에요. 언젠가 제가 제 손으로 보존처리 못 하고 유물 설명을 못 할 때는 과감히 떠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교육은 가장 늦게까지 오랫동안 할 거예요. 저는 감사하게도 그런 집안에서 태어나 자연스럽게 문화재를 배웠지만, 일반 사람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많지 않아요. 그래서 재단을 만들어 마음 편히 오래 공부할 수 있게끔 해주고 싶습니다.”
- 요즘 한국 전통문화와 문화재에 관한 관심이 높습니다. 체감하는지요?
“불교 박람회 대박 났거든요. 젊은 친구들이 불교미술, 전통, 한복, 단청에 왜 열광하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관심을 실감하고 있어요. 저희 설명회에도 백 명 가까이 와요. 불교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처럼 강요할 수 없는 종교라는 면이 있잖아요. 요즘 젊은이들은 기댈 수 있는 곳이 많이 없으니 스스로 깨닫고 힘든 것을 힐링하기 위해 오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저희한테 오신 분들은 집중, 힐링, 몰두, 성취감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아픈 문화재뿐만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힐링하는 것도 제가 이 일을 하는 이유입니다.”
-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전수되는 분야에 여성이 진출하고 자리 잡기가 특히 힘든 것 같습니다. 후배에게 어떤 선배가 되고 싶으신가요?
“젊을 때부터 김도래라는 제 이름 앞에 ‘희망’, ‘멘토’, ‘모델’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그래서 없어도 있는 척하면서 살았고요. 어떤 부분에서는 행복한 척, 있어 보이는 척을 많이 했어요. 지금은 그렇진 않아요. 제자나 후배들이 저를 봤을 때 ‘행복한 사람’으로 보였으면 좋겠어요. 저는 불교미술하는 사람, 문화재 복원하는 사람이 많으면 좋겠거든요. 옛날에는 내가 열심히 공부하고 가르치면 사람이 많아진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까 아니더라고요. 내가 행복해 보이면 그런 사람이 많아질 수 있거든요.”
- 문화재 수리 기술자의 수입은 어느 정도인가요?
“우선 말하고 싶은 것은, 웬만한 사람보다 많이 법니다. 왜 그런 구조냐면 우리나라는 반만년 역사라 문화재가 많아요. 그런데 주변에 문화재 수리 기술자 본 적 있으세요? 환자는 많은데 의사는 없어요. 그러니까 환자는 줄을 서고 의사가 돈을 많이 벌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그런데 하는 일에 비해 많은지를 본다면 적은 것 같아요. 우리끼리는 우스개로 ‘자식 죽으면 또 낳으면 되지만 문화재는 안 된다’고까지 해요. 그럴 정도로 희소성 있고 중요한 일입니다. 이처럼 가치 있는 일을 하는데 더 벌어야 한다는 생각도 들긴 하거든요. 그러려면 처우가 좋아져야 하고 이 분야에 관심 가진 사람이 많아져야 합니다.”
- 이 분야로 진출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으신가요?
“‘돈 좀 번다며?’ 이런 마음으로 하는 사람들은 당장 내쫓아요. 십 년 동안은 죽을 둥 살 둥 해야 하는 고생스러운 일이에요. 그 힘듦을 버틴 다음 단맛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남의 목숨(유물의 목숨)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끊임없이 공부할 자신이 있고, 용기가 있다면 시작해도 돼요. 진실한 마음만 가지고 오면 다 할 수 있어요. 그림과 문화재를 가르치는 건 선생인 저의 몫입니다.”
▼ 김서영 기자 westzero@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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