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트라움 [겨를]초보 살림꾼의 꿈
어릴 적에는 ‘밥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엄마에게 세 끼 밥상이 족쇄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집안일은 보상이나 성취감도 없이 노동력만 소모하는 일이라 여겼다. 아마도 나는 살림이 지극히 수동적 행위라 오해했던 것 같다.
엄마의 살림 선생님은 할머니였다. 얼마나 무서운 선생이었는지! 엄마가 할머니에게 혼나며 쌀을 씻고 반찬을 만들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부엌에서 몰래 울던 모습도. 어쩌면 그래서 엄마는 내게 살림을 가르쳐주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내 딸은 다르게 살길 바라는 엄마의 바람과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나의 다짐이 만나 살림의 재능 없는 아이로 자랐다. 특히 할머니가 강조하던 ‘손끝이 야무진 여자’는 나와 거리가 멀었다. 아니, 사실은 일부러 모든 것을 망쳐놓기도 했다. 집 안에 갇힌 삶을 살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러다 보니 정말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됐다. 가만히 앉아 밥상을 받는 승리자. 그것이 가부장적 세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살림에 대한 무지와 무능의 최대 피해자는 나 자신이었다. 끼니를 대충 때우는 데 익숙했고, 조금만 바쁘면 집 안은 서서히 피로와 무관심이 쌓인 풍경으로 변해갔다. 사랑하는 이와 마주 앉아 정성껏 차린 밥 한 끼를 먹는 일은 미루면서 글 속에서만 사랑을 말했다.
살림에 대한 생각이 바뀐 건 여기, 춘포에 살면서부터다. 아침마다 집 앞을 말끔하게 쓸고, 마당과 텃밭을 가꾸는 할머니들을 보며 돌봄의 방식과 의미를 다시 배운다. 마당 귀퉁이에 세워둔 빗자루의 방향과 텃밭 식물의 간격, 고추를 말리다가 들여놓는 시각까지 모두 이유가 있다. 볕이 드는 자리에 있어야 할 것과 그늘에서 쉬어야 할 것이 있고, 노인 혼자 사는 집에서도 때가 되면 어김없이 밥 짓는 냄새가 난다. 그들이 매일 되풀이하는 일은 하루의 질서이고, 그 질서는 한 사람의 생을 만든다. 아흔 살 노인이 새벽부터 밭을 가꾸는 건, 그저 생산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삶의 질서와 리듬을 지키며 살아 있다는 증거를 스스로 확인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살림은 누군가를 위한 희생이나 수동적 노동이 아니다. 나와 나를 지탱하는 환경을 주체적으로 가꾸고 돌보는 일이다. 밥상을 차리고, 집을 정리하고, 제철 음식을 장만하는 건 삶의 지속성을 만드는 가장 오래된 기술이기도 하다.
살림을 잘하고 싶다. 먹고사는 일에 정성을 다하고, 몸을 부지런히 움직일 줄 알고, 근원을 알 수 없는 욕망을 좇는 삶이 아니라, 하루를 제대로 돌볼 줄 아는 삶을 살고 싶다. 쓰는 손과 밥 짓는 손이 같은 온도와 정성으로 움직이길 바란다.
구석구석 내 손길이 닿은 보금자리와 속을 든든하게 하는 밥이 만드는 삶. 그런 삶으로 지은 글이라면, 누군가의 피로와 허기를 달래줄 수 있지 않을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쓸까. 매일 묻고, 매일 연습한다. 손끝이 야무진 사람이 되기를, 그 손에서 잘 익은 무언가가 나오기를 바라면서.
지난달 20일 발생한 ‘진해 잠수부 3명 사상 사고’와 관련해 컨테이너선 하부청소를 맡은 하청업체 대표와 관계인 등 2명이 불구속 입건됐다.
수사당국은 사망 잠수부들이 일산화중독에 의해 숨진 것으로 파악했다.
창원해양경찰서는 12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하청업체 대표 A씨와 감시인 B씨를 불구속 입건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A씨 등은 지난달 20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 부산신항에서 발생한 잠수부 3명 사상 사고와 관련해 안전 조치 의무를 다하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당일 작업에 나섰던 잠수부 3명은 바닷속으로 들어간 지 10분 만에 의식을 잃었다. 3명 모두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으며, 이 중 2명은 숨졌다. 1명은 사고 발생 사흘 만에 의식을 되찾았다.
당시 선박 위에서 잠수부들 작업을 감시하던 B씨는 잠수부들이 상당 시간 올라오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고 확인하러 갔다가 물속에서 의식을 잃은 3명을 발견했다.
수사기관은 이들이 안전규정을 어기고 작업을 진행했다고 보고 있다. 작업 시 잠수부 2명당 1명의 감시인을 둬야 하고, 잠수부와 감시인 간에 연락할 수 있는 통화장치와 비상 기체통이 지급돼야 하지만 이날 현장에서는 해당 물품이 지급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편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이번 사고로 숨진 잠수부 2명을 부검한 결과 사인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나타났다. 숨진 잠수부들의 혈중 카복시헤모글로빈(COHb) 수치는 사망에 이를 정도였다. 숨진 잠수부들이 착용했던 공기 공급장비에서는 고농도의 일산화탄소가 측정됐다.
잠수부들의 이번 작업은 선주인 HMM에서 KCC로, 그다음 MOT로 이어지는 도급구조 속에서 진행됐다. 수사기관은 도급 구조와 안전보건 규정 등을 자세히 살펴 사고 책임 여부를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사고 유족은 국회 전자청원 등을 통해 철저한 원·하청 조사와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경남 함양에서 15년째 사과 농사를 짓는 마용운씨는 2㏊(약 6000평)에 달하는 사과밭이 이제 짐처럼 느껴진다. 5월 초 피던 사과꽃이 기온 상승으로 최근에는 4월 초에 피고, 꽃샘추위라도 닥치면 냉해도 크게 발생한다. 봄을 견뎌낸 사과도 여름 폭우에 떨어져나가 수확량이 줄었다. 마씨는 12일 “기후변화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 농민”이라며 “더 이상은 피해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기후변화로 생업을 지키기 어려워진 농민 6명이 온실가스 배출 1위 기업인 한국전력과 산하 5개 발전공기업을 상대로 기후위기 책임을 묻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다. 폭염과 가뭄, 폭우 등 이상기후로 발생한 농작물 피해는 기후위기를 부른 기업이 물어내야 한다는 취지다. 국내 농업 분야의 기후 피해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는 첫 민사소송이다. 해외에서는 페루 농업인이 독일 에너지 기업 RWE를 상대로 낸 소송, 네덜란드에서 환경단체가 석유기업 셸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 등의 사례가 있다.
환경단체 기후솔루션에 따르면 2011~2022년 한전과 발전사들이 배출한 온실가스는 국내 전체 배출량의 23~29%를 차지한다. 한전과 발전사는 전체 발전량의 95% 이상을 화력발전에 의존하고 있는데, 석탄발전 비중만 약 72%에 달한다.
이번 소송에서 농민 1인당 청구액은 500만2035원이다. 500만원은 재산상 손해의 일부이고, 2035원은 상징적인 의미를 담아 위자료로 책정했다. 기후솔루션은 “현 정부의 2040년 탈석탄 목표보다 앞선 2035년까지 석탄발전 퇴출을 요구하는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농민은 기후위기를 최일선에서 마주하는 당사자다. 한반도의 최근 30년간(1991~2020년) 평균기온은 1912~1940년 평균과 비교해 1.6도 높아졌고, 강수량은 135.4㎜ 증가했다. 충남 당진에서 35년째 벼농사를 짓고 있는 황성열씨는 “농촌에서 풍년이라는 표현이 사라진 지 5년이 됐다”며 “병충해와 폭우, 폭염 피해로 벼 수확량이 줄고 품질이 떨어져 생계가 위태롭다”고 말했다.
경기 이천에서 복숭아 농사를 하는 송기봉씨는 기후변화로 복숭아순나방이 창궐해 나무를 베어냈고, 제주 서귀포에서 감귤 농사를 짓는 윤순자씨는 온난화로 ‘제주 감귤’ 경쟁력이 사라져 손해를 봤다. 경남 산청 이종혁씨의 딸기 하우스는 폭우로 물에 잠겼다.
이번 소송을 진행하는 임두리 변호사는 “이번 소송을 계기로 농업인들이 기후 피해를 보는 현실이 더 많이 알려지고, 한전과 자회사가 적극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을 이행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퇴역 군인 노상원씨(전 국군정보사령관) 등의 내란 중요임무종사 혐의 재판이 열리는 날마다 서울중앙지법 417호 형사대법정에선 소란이 벌어진다.
김 전 장관 변호인단은 검사의 신문에 끼어들며 트집을 잡는 일이 잦다. 특검을 향해 “바보냐” “비겁하다” “졸렬하다”는 등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내고, 증인에게도 막말과 조롱에 가까운 질문을 던지면 검사도 점점 언성을 높인다. 김 전 장관 측의 막무가내식 변론으로 재판 때마다 유사한 언쟁이 벌어지면서 재판이 예정대로 진행되지 않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선관위 직원들은 한국 최고의 권력기관이네요? 검사들이 장관이랑 국무위원, 군사령관도 다 불러서 조사한 거 알아요? 근데 증인은 달달하네? 검사가 직접 출장을 왔네요.”
지난 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재판장 지귀연)에서 열린 재판에서 김 전 장관 측 이하상 변호사는 이날 법정에 나온 증인 A씨에게 대뜸 이렇게 물었다. 검사들이 A씨를 직접 찾아가 조사를 한 게 문제라는 취지다. A씨는 중앙선거관리위원 과천청사의 시설방호를 담당하는 사무관으로, 계엄군이 선관위에 들이닥쳤다는 사실을 전해 들은 뒤 곧바로 청사로 갔었다.
A씨가 “당시 제가 검찰에서 전화해도 받을 수 없을 정도로 바빠서, 겨우 시간을 내서 그렇게 조사가 이뤄졌다”고 답하자 이 변호사는 또 물었다. “당시 계엄 직후에 정신없던 건 군인들도 마찬가지예요. 그런데도 검사가 군인과 장관의 사정은 안 봐주고, 선관위만 봐준 이유가 뭐죠?” “증인한테만 찾아가는 서비스로 제공한 건 맞네요? 우린 한 번도 검사로부터 (그런 조사) 받은 적 없는 데 왜 선관위만 그렇게 했을까요?”
김 전 장관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계엄을 사전에 논의하고 당일에는 군 지휘부에 각종 명령을 하달한 핵심 피의자다. 그는 ‘내란 2인자’로 불릴 정도로 불법계엄 사태에 깊이 관여해 검찰 특수본에 가장 먼저 기소됐다. 단순히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은 A씨와 김 전 장관의 상황이 전혀 다른데도, 이 변호사는 검사가 A씨에게만 특별 대우를 해줬다는 억지 주장을 계속했다.
이 변호사는 이날 검사 측 신문기법에 문제 제기를 계속하다 재판부가 이를 제지하자 “저희는 맨날 통제하면서 검찰은 왜 안 하시냐”며 “(재판부가) 특검 편만 드는 거 아니냐”고 따지기도 했다.
김 전 장관 측 변호인단은 지난 4월 헌법재판소에서 이미 기각된 ‘계엄의 정당성’이나 ‘부정선거론’을 다시 꺼내기도 한다. 지난달 21일 열린 재판에서는 선관위 서버실의 보안을 담당하는 민간업체 직원을 상대로 ‘해당 업체가 중국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선관위의 보안이 왜 이렇게 허술한지’를 반복해서 물었다.
특검이 출범한 뒤로는 ‘특검법은 위헌이자 마녀사냥’이라는 취지의 주장도 하고 있다. 이 변호사는 지난 6월23일 김 전 장관의 추가 구속영장 심사에서 특검팀을 처음 마주하자마자 “특검보가 이 사건에 관여할 자격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다”고 쏘아붙였다. 법정에 나온 김형수 특검보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자 “특검보는 왜 말을 못 합니까? 특검보는 바보입니까?”라며 반발하기도 했다.
김 전 장관 측은 신속 재판과 재판 공개 등을 명시한 특검법이 위헌이라며 재판부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요청했다. 이는 법원에서 재판 중인 사건에 적용되는 법률의 위헌 여부를 헌법재판소에서 따져볼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재판부가 김 전 장관 측 신청을 받아들여 헌재에 심판을 제청하면 결정이 나올 때까지 재판이 멈춘다.
특검팀은 김 전 장관 측이 재판을 지연시킬 목적으로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원하는 거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김 전 장관 측 유승수 변호사는 “모욕적인 주장”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특검의 무리한 주장과 수사를 중단할 수 있게 사법부가 제재를 가해야 합니다. (…) 특검법은 분명히 마녀사냥입니다. 특검의 폭주, 공소 유지가 정말 망신 주기가 아닌가요? 대통령에 대해서 체포영장까지 발부해서 구치소에서 굳이 끌고 와야겠다는 게 망신이 아니면 뭡니까? 영부인을 지낸 그런 분도 망신 주려는 목적으로 수사하고 있습니다. 수사절차 자체가 형벌입니다. 국민 인권을 탄압하는 수사하는 게 지금 특검의 행태입니다.”
최근 내란 재판에서는 윤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이 국회에서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된 뒤에도 불법계엄 상황을 이어가려 했다는 진술이 계속 나오고 있다.
지난 11일 열린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재판에는 김영권 국군방첩사령부 방첩부대장(대령)이 증인으로 나왔다. 국회가 계엄을 해제한 후 ‘상황이 종료됐다’고 믿었던 김 대령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이 김 전 장관과 통화하는 모습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고 했다.
“김용현 장관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곽 사령관님의 답변은 정확히 들었습니다. ‘장관님, 지금 국회에서도 병력들이 다 철수했는데 선관위에 다시 병력을 투입하는 것은 어렵겠습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를 지켜본 김 대령이 급히 작성한 메모도 이날 법정에서 공개됐다. 김 대령은 “이미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 의결이 끝났는데, 그 이후에 다른 병력을 출동시키라는 상황이 너무 어처구니없고 어이가 없어서, 반드시 증거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메모했다”고 설명했다.
가장 아래에 적힌 내용은 계엄이 끝난 뒤 김 전 장관이 자신의 부하들에게 남긴 말이라고 한다. 김 대령은 “상황이 정리된 뒤 새벽 4시쯤 국방장관이 VTC(화상 원격 회의)로 주요 병력을 움직였던 지휘관들만 놓고 회의를 했다”며 당시 김 전 장관이 한 말을 들리는 대로 적었다고 설명했다.
“숫자는 시간이고, MND는 국방부 장관(이라는 뜻)입니다. 선관위 투입 뒤에 화살표는 아마 곽 사령관의 답변인데, ‘국회에서도 이미 (병력이) 빠져나가 (선관위는) 안 된다’고 거절하는 내용입니다. 지운 건 ‘수사’라는 단어인데, 주변에 작전부대원이 있었기 때문에 자극적인 내용을 방첩부대장이 쓰는 것은 부적절한 것 같아서, 볼까 봐 지웠습니다.”
“누가 수사대상이라고 생각하고 이런 메모를 했던 것이냐”는 검사의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제가 생각할 때 정상적이지 않은 비상계엄 발동했던 책임자들이 (전부) 수사 대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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