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고려아연 신주발행 무효”…영풍 승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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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고려아연 신주발행 무효”…영풍 승소

이길중 0 0
1심 법원이 고려아연이 2023년 현대자동차그룹 해외 계열사 HMG글로벌에 한 신주발행을 무효로 판단했다. 고려아연 측은 “신주 발행을 적법하게 진행했다는 것이 일관된 입장”이라며 “항소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2부(재판장 최욱진)는 27일 영풍이 고려아연을 상대로 제기한 신주발행 무효 소송에서 “피고(고려아연)가 2023년 9월13일에 한 액면금 5000원의 보통주식 104만5430주의 신주발행을 무효로 한다”고 판단했다. 고려아연의 신주발행이 ‘경영상 필요’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은 인정했지만, ‘외국인 합작법인’으로 대상을 한정하는 정관을 위배해 기존 주주의 신주인수권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고려아연은 2023년 9월 5270억원 규모의 보통주 104만5430를 발행해 현대차그룹의 해외 계열사 HMG글로벌에 배정했다. HMG글로벌은 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가 공동 설립한 해외 법인으로, 고려아연 측이 ‘제3자 배정 유상증자’(특정 기업·금융기관에 신주를 배정해 자금을 조달받는 것) 방식으로 HMG글로벌의 투자를 받은 것이다. 고려아연은 2차전지 등 신사업의 투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지만, 결과적으로 HMG글로벌은 고려아연 지분율의 5.05%를 확보했다.
고려아연의 대주주였던 영풍은 고려아연과 경영권 다툼을 벌이던 지난해 4월 이 신주발행이 위법하다며 무효소송을 제기했다. 고려아연의 정관은 ‘경영상 필요’에 의해 ‘외국인 합작법인’을 대상으로 신주를 발행하는 경우 주주가 아닌 제3자 신주발행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 신주발행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그룹 지배력을 높이려는 경영권 방어가 목적이고, HMG글로벌 또한 외국인 합작법인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신주발행은 고려아연의 경영상 필요로 이뤄진 것으로 인정된다”고 봤다. 고려아연 경영진과 HMG 글로벌 사이 의결권 공동행사 약정이 존재하지 않고, 영풍 측이 제출한 증거만으로 HMG 글로벌이 최 회장 측의 우호 주주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어 고려아연 측이 2021년 4월부터 현대차와 폐배터리 사업에 협력해왔고, 2023년 8월 HMG 글로벌과 사업 제휴 합의서를 체결한 점을 근거로 “전략적 제휴 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경영상 목적에서 신주발행을 한 것으로 인정된다”고 밝혔다. 또 신주발행이 경영권 분쟁이 있었더라도 고려아연 측이 경영권 방어만을 목적으로 신주 발행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HMG글로벌에 대한 신주발행은 정관을 위반한 중대한 위법이 있다”고 판단했다. 정관에서 ‘외국의 합작법인’은 고려아연이 다른 기업과 공동으로 출자해 설립한 법인으로 해석되는데, HMG글로벌은 고려아연이 출자에 참여한 법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간 고려아연은 외국인 투자자에게 신주를 발행해 협력관계를 구축하면 두 회사 사이에 합작 관계가 성립하므로, ‘외국의 합작법인’을 합작의 상대방 법인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 또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고려아연 측은 1심 판결에 대해 “항소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1심 재판부가 신주발행의 경영상 필요성을 인정한 만큼, 신주발행이 적법하게 진행됐다는 기존 태도에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1심 법원의 ‘외국의 합작법인’ 판단에 대해 “외국의 합작법인과 관련된 당사 정관의 제정 취지와 의미를 더욱 상세히 소명해 적정성을 인정받겠다”고 밝혔다.
영풍 측도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HMG글로벌에 신주를 발행한 행위가 법적으로 무효임을 명확히 한 것으로, 정관의 법적 구속력과 주주권 보호의 원칙을 재확인한 결정”이라며 “최윤범 회장과 경영진은 위법한 신주발행으로 인해 피해를 본 모든 당사자와 고려아연에 사과하고 피해 회복을 위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족 63% “트라우마 여전”지원 못 받아 사비로 상담
안전·목숨 경시하는 사회대형 인명사고 근절 못해
김동희씨(72)는 29일 아침 검은색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간밤에 꾼 꿈에 동생 송희씨가 나왔다. 무용을 하던 동생은 꿈에서도 예뻤다. 김씨는 동생의 잔상을 마음에 품고 서울 서초구 양재 매헌시민의숲으로 향했다.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희생자를 기리는 위령탑이 있는 곳이다. 30년 전 죽은 송희씨의 이름도 그곳에 있다.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와 삼풍백화점붕괴참사유족회는 이날 오전 11시 서초구 양재 매헌시민의숲 삼풍참사위령탑 앞에서 추모식을 열었다. 1995년 6월29일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서른 번째 맞이하는 추모식이었다. 유족들은 검은 옷에 분홍색 리본을 달고 위령탑 앞에 마련된 의자나 돗자리에 앉았다. 유족들은 추모식 내내 눈가를 훔치며 사랑하는 사람을 애도했다.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는 국내 단일 사고로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냈다. 지상 5층, 지하 4층 규모의 삼풍백화점은 사고 당일 오후 5시57분 왼쪽부터 기울기 시작해 20초 만에 완전히 주저앉았다. 502명이 사망했고 6명이 실종됐으며 937명이 다쳤다. 수사를 통해 부실 시공과 이를 덮어준 공무원의 뇌물 수수 등 부패의 진상이 드러났다.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유족의 고통은 현재 진행형이다. 재난피해자권리센터가 발표한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30주기 유가족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유가족 중 63.0%가 여전히 반복적 분노, 무기력 등을 겪고 있다. 82.3%는 참사 이후 전문가의 심리 지원을 받지 못했다.
참사로 남편을 잃은 김모씨(59)는 “지금도 건물 지하에 가지 못하고 문을 열어 놓고 잔다”며 “남편을 잃고 가족들이 다 무너졌는데 아무 지원도 받지 못해 사비로 심리 상담을 받았다”고 말했다. 김동희씨도 “동생의 시신이 마지막쯤에 나왔는데 그때 제 머리가 하얗게 샜다”면서 “아직도 트라우마가 남아 있고 동생이 많이 그립다”며 울먹였다.
유족들은 참사가 반복되는 사회 구조가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딸을 잃은 김윤아씨(72)는 “세월호도 그랬고 이태원도, 무안공항 제주항공 사고도 그랬듯 참사가 계속된다”며 “30년이 흘렀지만 바뀐 것이 크게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명희씨(52)는 “아직도 큰 건물에 들어갈 땐 ‘여기도 무너지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며 “여전히 우리 사회는 안전과 목숨, 이 두 가지를 우선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공개한 건설노동자 106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81.7%가 ‘삼풍백화점과 같은 대형 참사가 다시 발생할 수 있다’고 답했다. 노동자들은 경쟁과 이윤을 위해 값싼 자재를 쓰고 공사 기간을 단축하는 등 관행이 대형 참사의 원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추모식엔 세월호 유가족과 일반 시민 등도 참여했다. 이들은 유족들을 위해 ‘기억’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강소연씨(44)는 “유족들이 스스로 잊히고 있다고 생각하는 점이 마음이 아팠다”며 “참사가 반복되는 만큼 사회적 차원에서 삼풍 참사를 기억할 수 있는 노력을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세월호 유가족인 최순화씨(61)는 “유가족에게 해줄 수 있는 첫 번째 일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라며 “유가족이 참사 이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관심을 가지고 기억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번엔 좀 잘 하는가 했더니만 결국 또 사달이 났어.”
지난 24일 강원 동해시청 인근에서 만난 한 택시기사가 착잡한 듯 말했다. 동해시는 현 심규언 시장의 구속과 재판으로 술렁이고 있다. 심 시장은 지난해 12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됐다. 그는 법원에서 보석허가를 받아 조만간 시정에 복귀할 것으로 보이지만, 이번 사건으로 동해 시민들이 받은 충격은 적지 않다.
동해시는 1995년 첫 민선 지방자치단체장을 선출한 이래 30년 동안 임기를 제대로 마치고 퇴임한 시장이 없다. 민선 1~2기 김인기 전 시장은 업자와 시청 공무원으로부터 뇌물을 받아 중도 낙마했다. 그의 동생인 민선 4~5기 김학기 전 시장도 기업 대표로부터 뇌물을 받아 처벌됐다. 민선 3기 김진동 전 시장은 공직선거법을 위반해 임기 중 재판에 넘겨졌다. 민선 6기부터 3연임에 성공했던 심 시장도 결국은 ‘비위의 사슬’을 벗어나지 못했다.
본격적인 지방자치 시대가 열린지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끊이지 않는 민선 지자체장들의 비위와 권한 남용, 전횡 등은 ‘풀뿌리 민주주의’를 갉아먹는 요소로 작용한다.
26일 경향신문이 행정안전부에서 입수한 ‘지방자치단체장 사임 및 퇴직 현황’ 자료를 보면 1995년 첫 선거 이후 민선 8기(2022년)에 이르는 동안 중도 사임하거나 직위를 박탈당한 단체장은 모두 298명이다.
이중 각종 범죄와 비리 등으로 당선무효형을 받아 퇴직한 지자체장은 모두 140명에 달했다. 대선, 총선 등의 출마를 이유로 중도 사임한 지자체장도 134명이다. 임기 중 사망이 21명, 지자체 통폐합으로 인한 직위 상실이 3명이었다.
민선 8기까지 투표로 선출된 지자체장은 총 2111명(광역 141명, 기초 1970명)이다. 사망·통폐합을 제외하더라도 선출된 지자체장의 약 13%(274명)가 본인 사유로 임기를 채우지 못한 것이다.
임기를 1년 가량을 남겨둔 민선 8기에서도 사임이나 퇴직으로 물러난 단체장이 이미 16명(사망 3명 제외)이다.
민원인 성상납,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구속된 김진하 양양군수는 1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2년에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았다. 박상돈 전 천안시장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박우량 전 신안군수는 직권남용으로 시장직을 상실했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을 비롯해 3명의 광역·기초단체장이 대선과 총선 출마 등을 위해 사임했다. 문헌일 전 서울 구로구청장은 수백 억원대의 보유 주식을 백지신탁하게 되자 돌연 사퇴해 논란이 일었다.
지자체장이 임기 도중 자리를 비우게 되면 행정공백 문제가 발생함은 물론 재보궐선거를 치르느라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한다. 결국은 국민들이 피해를 보는 셈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020년 4월 15일 이후 최근 5년간 지자체장·지방의원·교육감의 중도 사임과 퇴직으로 인해 모두 161개 선거구(교육감 3곳)에서 재보궐선거가 치러졌다. 여기에 들어간 비용은 총 1764억7379만원(교육감 708억335만원)에 달한다. 범위를 2010년대 이후로 넓힐 경우 재보궐선거에만 수 천억원의 혈세를 지출했을 것이란 추정이 가능하다.
30년간 지방자치 성숙기를 거치면서도 여전히 단체장의 권력형 비위가 근절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민선 단체장이 줄줄이 중도 낙마한 일부 지역은 ‘시장·군수의 무덤’이라는 오명도 썼다.
전남 해남군에서는 3명의 군수가 뇌물수수와 인사 비리 등으로 불명예 퇴진했다. 민선 3∼4기 박희현 전 군수는 직원들로부터 인사 청탁 대가로 돈을 받았다 2007년 낙마했다. 뒤를 이어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김충식 전 군수는 발주 공사 특혜 대가로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돼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민선 5기 박철환 전 군수는 공무원 인사평가를 조작한 혐의 등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으면서 임기를 마치지 못했다.
전북 임실에서도 민선 3기때 재선에 성공한 이철규 전 임실군수가 사무관 승진후보자들로부터 뇌물을 받아 물러났다. 이어 당선된 김진억 전 군수는 공사 수의계약 대가로 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아 낙마했다. 민선 5기에는 강완묵 전 군수 역시 업자로부터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집행유예형을 받아 직위를 상실했다.
경북 청송군에서는 민선 1~2기 안의종 전 군수가 선거법 위반으로 낙마했다. 이어 당선된 박종갑 전 군수와 3기 배대윤 전 군수가 공천헌금 상납과 공사 관련 특가법상 뇌물혐의로 구속됐다. 민선 4기에는 윤경희 전 군수가 선거법 위반으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경북 울릉군과 경남 창녕군 등에서도 선거법 위반과 뇌물 수수 등으로 인한 단체장의 잇단 낙마 사례가 있었다.
지자체장들의 반복되는 비위와 전횡 등은 지역에서 ‘소통령’으로 불릴만큼 집중된 권한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지자체장은 지방자치법에 따라 자치단체의 최고집행기관으로서 사무를 총괄하고 집행할 권한을 갖는 독임제(의사결정권이 1명의 책임자에 부여됨) 행정기관이다. 각종 권한이 단체장 한 사람에게 집중된 구조라는 얘기다.
지자체장의 대표적인 권한으로는 예산편성권과 조직·인사권, 각종 인허가 권한 등을 들 수 있다. 올해 전국 지자체의 전체 세입예산 규모는 505조원이 넘는다. 지자체에 소속된 공무원 수는 지난해 말 기준 31만5000여명이다.
이 막대한 예산을 각 지자체장들이 주무른다. 적게는 수백명에서 많게는 1만명이 넘는 공무원 인사권도 지자체장들이 독점한다. 여기에 광역단체를 기준으로보면 많게는 수십 곳에 이르는 산하 공사·공단과 출자·출연기관, 각종 유관 기관·단체장의 임면권까지 쥐고 있다.
지자체장들이 손에 쥔 권한은 막강하지만 이를 견제할 수단은 마땅치 않다. 지자체장 견제를 위해 마련한 가장 큰 제도적 장치가 지방의회지만,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지방의회는 여대야소가 될 경우 지자체장에게 종속돼 ‘거수기 역할’에 머무르는 경우가 다반사다. 영·호남 등 특정 정당 지지성향이 강한 지역은 지자체장과 다른 정당 소속 지역구 의원이 1명도 당선되지 못한 경우가 상당수다. 주민들이 직접 단체장을 견제하고 압박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된 ‘주민소환제도’ 등은 투표율 충족요건 등 문턱이 높아 실효성을 갖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한국법제연구원은 지난해 발간한 ‘자치법제연구’ 보고서에서 “지방자치제 시행 30년이 경과하는 동안 자치권과 자치분권이 확대돼 단체장의 권한이 확대된 만큼 그에 따른 단체장의 책임성 강화 방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연구원은 토착세력과의 유착 비리 등을 막기 위한 단체장 재임 규제 강화(2회 연임 제한)와 독립된 인사위원회 및 지방감사원 설치, 주민감사청구와 주민소환 요건 완화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재현 배재대 자율전공학부 교수(한국지방정치학회장)도 “단체장 비위는 권한의 과잉과 제도의 미흡이 동시에 작동한 결과”라며 “단체장의 인사·예산권에 대한 내외부 통제 장치를 강화하고, 인사위원회나 예산심의기구의 독립성·전문성을 높이는 동시에 ‘주민에 의한 통제 메커니즘’을 제도화·내실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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